초상화

일랑의 화폐 초상 그림

천년의 걸물 2026. 4. 7. 02:47

이종상 작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영정>: 절제된 색채와 단아한 미학

 

이 두 영정의 가장 큰 특징은 단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표정에 있다. 작가 이종상은 율곡과 신사임당이 지닌 학문적 깊이와 올곧은 심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두 인물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부드럽고 맑은 눈빛은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상징하며, 굳게 다문 입술은 학문적 절제와 조선의 품격을 대변한다.

 

장보고 상이나 광개토대왕 상에서 보여준 강렬하고 역동적인 필선과는 달리, 이 영정에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이 주를 이룬다. 의복 또한 굵고 힘 있는 선 대신 가늘고 유연한 선으로 처리하여 학자의 품위를 유려한 기품으로 강조하였다. 눈썹과 머리카락, 수염 한 올 한 올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세필(細筆) 기법을 통해 인물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사실성을 확보하였다.

 

색채는 철저히 절제되었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백색·흑색·옅은 밤색 계열의 단아한 색조를 사용하여 학자의 내면적 고결함을 부각시켰다. 이는 인물의 외형을 넘어 정신적 품위를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실현

이종상 화백은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영정〉을 통해 동양화의 핵심 사상인 ‘전신사조’—즉 외형뿐 아니라 인물의 정신과 인격까지 담아내는 화법—를 완벽히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율곡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 성리학의 태두가 지녔던 인품과 학문적 위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동일 작가가 화폐 초상을 전담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일랑이 40세이던 1978년오천원권을 그렷고, 71세이던 2009년 오만원권을 그렸다. 30년이라는 시차 속에서 서로 다른 시대적 요구와 시각 문화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그의 초상이 다시금 국가 화폐라는 ‘국가 이미지의 심장부’에 채택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그의 초상 미학이 일회적 성과를 넘어 기억을 지탱하는 지속 가능한 표상 체계로 확고히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사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화폐 초상화는 단순한 인물 재현을 넘어 국가적 정체성과 권위를 담아내야 하는 까닭에, 이를 맡을 수 있는 전문 초상화가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종상의 초상화는 역사를 통찰하는 깊이와 조형적 신뢰도를 동시에 충족시켰으며, 이는 국가 제도가 공식적으로 보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독보적 성취는 ‘국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화폐 초상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전문 초상화가가 한국 화단 내에서도 극히 드물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일랑 이종상의 역할: 구조적 완결과 기준점의 형성

 

일랑 이종상은 근현대 한국 초상화가 도달한 하나의 구조적 완결점이자, 후대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는 기준점이다. 그는 단순한 ‘전통의 계승 방식’을 넘어, 이미 제도화된 초상 언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시하였다.

 

일랑은 한국 화폐 초상을 두 차례 전담하며 자신만의 독자적 조형 언어와 국가적 표상 체계를 완벽히 통합하였다. 이를 통해 초상화 인식의 내부 논리를 완성시켰으며, 역설적으로 이러한 완결성은 후대 작가들에게 동일한 양식의 답습을 허용하지 않는 심미적 장벽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한국 초상화의 제도적·미학적 지평을 동시에 확장한 결정적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