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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석 초상화의 현대적 전신(傳神) 1

이 시대의 초상: 교감의 확장과 현대적 변용2010년 동산방화랑에서 개최된 개인전 “이 시대의 초상전”은 무석의 초상 미학이 공적 영역을 넘어 사적 교감의 영역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계기였다. 그는 스승 황수영과 이종상을 비롯하여 고은, 임권택, 김종규, 김남조, 이애주, 윤범모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오랜 유대를 화폭에 담았다. 이 작업에서 그는 대상의 외형적 형사(形似)에 매몰되지 않고, 각 인물의 삶의 궤적이 투영된 내면의 깊이를 포착해 냈다. 화면 구성 또한 전통적 규범을 응용하되, 인물의 성격에 맞춰 새로움을 추구하는 무석 다운 유연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육리문법의 현대적 재해석무석의 초상화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육리문법(肉理紋法)의 치밀한 변용이다. 그는 서..

초상화 2026.04.10

무석 초상화의 현대적 전신(傳神) 2

무석 손연칠 초상화의 조형성: 해부학적 구조와 전신(傳神)의 유기성초상화의 실천적 제작 공정은 무엇보다도 먼저 화면 전체의 안정된 구도 설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무석은 힘주어 강조한다. 인물의 자세와 시선, 그리고 화면 내 비례가 견고한 조형적 질서 위에 정립될 때 비로소 세부 묘사 역시 흔들림 없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면 묘사에서는 골격 구조에 대한 깊은 해부학적 이해가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상황과 심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 특유의 개성과 표정을 포착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초상화는 단순히 외형을 복제하는 작업이 아니라, 얼굴에 내재된 수많은 정보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톤의 미묘한 흐름을 어떻게 화면 위에 구현할 것 인가의 문제이다. 어느 부분을 강조하고..

초상화 2026.04.10

일랑 초상화의 종합과 완결

제도적 검증을 통한 미학적 안착이랑 초상화의 중요한 점은 작가 개인의 실험적 시도에 머물지 않고, 정부표준영정과 화폐 초상이라는 가장 엄격한 제도적 검증대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일랑의 초상화가 반복적으로 국가 이미지의 중심부에 채택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의 초상 인식이 특정한 시대의 일시적 미감이나 화가의 주관적 개성에 경도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장기적인 국가 기억을 보존하고 공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견고한 조형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일랑 이종상은 전통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화가’에 머물거나, 국가의 요구를 기계적으로 수행한 ‘기능공’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통의 미학적 정수와 국가 제도의 상징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초상화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안정화하고 ..

초상화 2026.04.10

현대 초상화 계보의 3분 구조

이종상 작. (정부표준영정) 1979년작. 비단 바탕에 채색.. 119 x 9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월전–일랑–무석으로 이어지는 초상 인식의 삼분(三分) 구조 1) 인식론적 계보의 전환근현대 한국 초상화의 전개는 단순한 화풍이나 기법의 변모가 아니라, ‘한국 초상화의 기풍과 그 맥의 계보는 무엇으로 인식하는가’라는 인식론적 전환점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당 김은호.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일랑 이종상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직선적 계승을 넘어, 각기 다른 초상 인식의 단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2) 일랑: 역사적 기억의 정립특히 일랑은 선대 작가들의 인식을 종합하여 초상을 개인적 표현이나 조형 실험의 차원에서 탈피시켰다. 그는 초상을 역사적·공적 기억이 응축되는 하나의 구..

초상화 2026.04.10

손연칠의 초상 미학

동산방화랑 초대 오프닝. (좌로부터 임권택 감독. 일랑 이종상. 김종규 회장) 작가의 본령무석은 화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본질적인 덕목으로, 숙련된 기교 이전에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강조한다. 초상화는 단순한 감상이나 주관적 정서의 산물이 아니라, 화가와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정적(靜寂)인 교감 속에서 그 진면목(眞面目)을 찾아가는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가는 대상 인물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沈潛)할 수 있는 정신적 평온함과, 대상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인격적 품위를 상대적으로 갖추어야만 한다. 이러한 내적 성찰과 태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대상의 참모습인 전신(傳神)이 화면 위에 살아나게 된다. 결국 초상화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작가의 오랜 연륜과 구도자적 수행을 통해 형..

초상화 2026.04.09

무석 손연칠의 정부표준영정

가야 시조 이진아시왕 상>: 역사적 실존, 왕의 초상 작가는 기록이 미비한 가야 시조를 형상화하며, 고대 국가의 개척자로서의 강인함과 성군(聖君)으로서의 온화함을 완벽한 미학적 균형으로 구현해 냈다. 작가는 대가야 특유의 '금동관'과 복식을 철저히 고증하여 작품에 역사적 실체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전설적인 건국 시조가 지닌 신화적 신비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이는 고대사의 위엄을 담은 정초(正初)한 조형을 현대적 필치로 되살려낸 결과다. 그는 전통 초상화의 핵심 기법인 배채법과 반개법 및 육리문 기법을 충실히 운용하여 화면의 깊이감과 조화로운 발색을 살려냈다. 안면 묘사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정밀함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의 입체감을 가미하여 인물의 생리적 생명력을 극대화했다. 이진아시왕의 기개와 철학..

초상화 2026.04.09

일랑 화업의 역사적 전신(傳神) 미학

인식 층위의 통합과 제도적 검증 운보 김기창과 월전 장우성이 각각 근현대 한국 초상화의 정신적 기초 확립과 조형적 외연 확장을 담당했다면, 일랑 이종상은 이 두 흐름을 국가 제도 안에서 작동 가능한 실천적 초상 체계로 구현한 작가다. 그는 특정 스승의 양식을 답습하거나 일정 방향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데 매몰되지 않고, 근현대 초상화가 축적해 온 전통적 인식과 기법을 제도적 요구에 맞게 종합하고 검증받은 독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랑의 초상화는 월전으로부터 계승된 정신 중심의 초상 인식, 즉 안면을 구성하는 필선과 반개법의 적극적인 활용과 육리문의 결 자체가 인물의 위상과 기운을 조직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파편화된 기법들의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학적 층위를 하나의 견고한 ..

초상화 2026.04.09

정부표준영정 속 운보·월전·일랑·무석의 초상 계보

정부표준영정이라는 동일한 제도적 제약 속에서도 현대 초상화의 계보를 잇는 네 화가는 각기 뚜렷한 미학적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기질의 차이를 넘어, 초상화에서 ‘전신(傳神, 대상의 정신을 전함)’의 핵심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1) 선택적 계승과 역동적인 해석의 장(場)김은호 문하의 교육은 특정 기법을 경직된 ‘비법’으로 전수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 결과, 스승에게서 확인되지 않는 육리문법(肉理紋法)은 운보에 의해 제한적으로 활용되었고, 반개법(半開法)은 월전에 의해 복원되었다. 반면 일랑 이종상은 이 두 요소를 종합적으로 습득하고 재구성하여 제자인 무석에게 이를 ‘비법’으로 전수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는 김은호 문하가 ‘완결된 전통의 단순 ..

초상화 2026.04.09

정부표준영정 제도와 월전 초상화의 미학적 긴장

정부표준영정 제도는 근·현대 한국 초상화가 직면한 특수한 제도적 환경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1973년 박정희 정부에서 역사 인물 초상의 난립을 방지하고 국가 차원의 통일된 시각 표상을 확립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부터 작가 선정 기준의 모호성, 제작 과정의 불투명성, 그리고 미학적 검증 장치의 부재는 지속적인 한계로 지적되어 왔다. 정표준영정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미학적 자율성과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는 이러한 제도적 규범과 작가적 미학이 가장 고도로 응축되어 충돌하고 공존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장우성 작. 김종직 상>(정부표준영정) 1977년. 비단 바탕. 70x55cm. 밀양 예림서원 김종직 상>: 전형적인 ..

초상화 2026.04.08

전통의 복원, 월전 장우성의 초상미학

전통의 복원과 제도 속의 전신 1) 생애와 화풍의 형성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1930년(18세)에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낙천헌(樂天軒)’에 입문하며 본격적인 화업(畫業)을 시작하였다. 그는 운보 김기창보다 한 살 위였으나, 입문 시기는 운보보다 약 4년 후가 된다. 장우성은 실기 교육과 병행하여 ‘한어 학원’에서 한문을 익히고, 서예가 김돈희(金敦熙)에게 서예를 사사하며 시·서·화(詩·書·畵)를 두루 갖춘 문인화의 기초를 체계적으로 습득하였다. 이러한 이력은 그의 회화가 단순한 기술적 숙련을 넘어, 전통 회화의 이론적·정신적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음을 보여준다. 입문 2년 만인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입선을 통해 화단에 등장한 그는 1..

초상화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