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손연칠의 초상 미학

천년의 걸물 2026. 4. 9. 17:33

동산방화랑 초대 <손연칠의 이시대의 초상전> 오프닝. (좌로부터 임권택 감독. 일랑 이종상. 김종규 회장)

 

작가의 본령

무석은 화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본질적인 덕목으로,  

숙련된 기교 이전에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강조한다. 

초상화는 단순한 감상이나 주관적 정서의 산물이 아니라, 

화가와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정적(靜寂)인 교감 속에서

그 진면목(眞面目)을 찾아가는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가는 대상 인물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沈潛)할 수 있는 정신적 평온함과, 

대상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인격적 품위를 상대적으로 갖추어야만 한다. 

이러한 내적 성찰과 태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대상의 참모습인 전신(傳神)이 화면 위에 살아나게 된다. 

결국 초상화의 진정한 예술적 가치는 작가의 오랜 연륜과 구도자적 수행을 통해 형성된 독자적인 정신의 깊이가 화폭에 투영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1) 불교미술의 토대와 일랑과의 만남

무석(舞夕) 손연칠(孫蓮七, 1948~ )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부 1기생(1971)으로 입학하여 인간문화재 석정(石鼎) 스님으로부터 전통 불화와 단청 기법을 사사하였다. 고등교육 체계 안에서 전통 불교미술을 수학한 최초 세대에 속하는 이러한 이력은, 훗날 그가 초상화라는 장르에 천착하게 되는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동방연서회에서 일랑 이종상을 만나 사군자부터 동양화의 기초를 재정립하였으며, 이후 김근중·김선두 등과 함께 일랑의 화숙인 랑우회(浪友會) 결성을 주도하였다. 이 시기의 학습은 단순한 사사 관계를 넘어,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독자적인 초상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1977년 일본 야마토문화관(大和文華館)에서 개최된 '고려불화 특별전'은 그에게 미학적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인 황수영 박사와 동행했던 일랑 이종상으로부터 전시 자료들을 전달받으며 비단 바탕의 배채법(背彩法)을 통한 채색 기법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결실로 1980년 고려불화 <지장도>를 모사하여 전승공예대전 장려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국내 작가에 의한 고려불화 재현의 효시로 기록된다. 이듬해에는 해인사 소장 국보 <영산회상도>를 모사하며 불교미술대전 종정상을 수상, 전통 기법의 숙련도에서 정점에 도달했음을 증명하였다.

 

2) 인물화로의 전환

손연칠은 "전통 불화를 공부하다 보니 일정한 한계가 보였고, ·보살상을 올바로 그리기 위해서는 인물화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목표가 보였다."고 회고한다. 이는 불교 회화의 규범적 도상의 재현을 넘어, 도상에서 인간의 형상과 그 내면에 깃든 정신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탐구로 회화적 지평을 확장했음을 의미한다.

 

무석은 스승 일랑으로부터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다양한 수련 과정을 거치며 초상화만의 독자적 특수성을 훈련받게 된다. 이후, 그는 화단의 두터운 신뢰와 스승 일랑의 추천으로 <의상대사>, <양만춘>, <허난설헌>, <이진아시왕>, <선덕여왕> 등 무려 8점의 정부표준영정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일랑 초상화의 유일한 계승자로 자리매김하며 국가의 시각 표상 확립에 기여하였다. 최근에는 영암군이 추진한 <의병장 양달사> 상을 제작하여 정부표준영정 105호로 지정됨으로써 그 정밀한 필력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한국 초상화의 계보와 인식론적 전환: 일랑에서 무석으로

1) 인식론적 전환의 연쇄와 계보의 재구성
한국 근현대 초상화의 전개는 단순한 화풍의 변모를 넘어, ‘초상의 기풍과 맥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인식론적 전환의 과정이다. 이당 김은호,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을 거쳐 일랑 이종상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각 시대적 과제에 응답하며 초상 인식의 단계를 구축해 온 역사적 흐름이다.

 

2) 일랑 이종상: 역사적 기억의 정립과 구조적 완결
일랑은 선대 작가들의 인식을 종합하여 초상을 개인적 차원에서 역사적·공적 기억이 응축된 구조적 형식으로 격상시켰다. 특히 화폐 초상을 통해 독자적 조형 언어와 국가적 표상 체계를 통합함으로써 근현대 초상화의 내부 논리를 완성했다. 이러한 ‘구조적 완결성’은 전통 초상의 전형을 확립한 정점인 동시에, 후대 작가들에게는 동일한 양식의 답습을 허용하지 않는 심미적 장벽이자 극복해야 할 제도화된 언어가 되었다.

 3) 무석 손연칠: 완결을 넘어선 새로운 응답과 전환
무석의 초상화는 일랑의 양식을 단순히 계승하거나 연장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는 일랑에 의해 견고하게 구축된 기존의 언어와 조건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시대의 초상을 담아낼 수 없다는 필연적 인식에서 비롯된 ‘응답’이다.
 4) 역사적 접점으로서의 사승(師承) 관계
두 작가의 관계는 수직적 사승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시대가 완결되고 그 너머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는 접점에 놓여 있다. 일랑이 전통의 전형을 완성하며 근현대 초상화의 종착점이자 디딤돌이 되었다면, 무석은 그 완결된 토대 위에서 인간의 생리적 실재성과 정신적 깊이를 재탐구함으로써 한국 초상화의 외연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전환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5) 공적 기록과 사적 교감의 이중주

손연칠의 화업은 정부표준영정이라는 공적 기록과 개인적 인연 및 수행의 궤적을 담은 고승 영정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따라서 그는 불교계의 대덕(大德)인 고암, 녹원, 법전, 지효, 화엄, 월서 스님 등의 진영(眞影)을 봉안하며 불교 초상화의 법맥(法脈)을 현대적으로 잇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폭넓은 작업 세계는 무석이 단순히 기교에 능한 화가가 아니라, 역사적 위인부터 구도자의 내면까지를 아우르는 인간론적 통찰력을 지닌 초상화가임을 증명한다.

 

손연칠 작. <월서 스님 진영> 2024년. 종이 바탕. 140x100cm. 제주 천왕사 소장

 

<월서스님 진영>: 직접 대면하여 옮긴 정면상의 위엄

보통의 진영(眞影)이 승려의 입적 후 기억에 의존해 그리는 추사(追寫)인 것과 달리, 2024년 제작된 <월서스님 진영>(사진 71)은 스님의 용체가 가장 여여(如如)한 생전에, 작가가 직접 대면하여 기록한 '생전 영정'이다. 이는 조선 초기 어진이나 공신도 상에서 정점(頂點)을 이루었던 실재적 생명력을 현대적으로 복원한 사례라 평가할 수 있다. 깊게 파인 주름의 굴곡과 안경 너머에 서린 자애로운 눈빛은 단순한 형상적 기록을 넘어, 작가와 대상이 나눈 깊은 교감의 시간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전통적인 승려 상 들은 대부분 측면 상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무석의 화면은 고려 불화의 전통적 정면관(正面觀)을 차용하여 종단 어른으로서의 위엄과 장엄함을 극대화했다. 또한 화면을 관통하는 구륵법(鉤勒法)의 선묘는 적절한 농담과 좌우 비대칭의 치밀한 구성력을 통해 초상화의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품위와 격조를 높이는 동시에 견고한 입체감을 확보한다. 이러한 필치는 마치 스님의 내면적 수행의 깊이를 형상화하듯 단단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또한 가사 자락의 질감과 그 결을 따라 흐르는 섬세한 문양은 조선시대 불화의 정교한 장식성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색감으로 재해석되어 세련된 미감을 선사한다. 월서 스님의 상좌인 지오 스님의 원력으로 조성된 이 진영은 장차 법주사 조사전(祖師殿)에 봉안되어 한 문중의 정신적 기둥이자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붓끝으로 올곧게 재현된 스님의 용체(容體)는 시대를 초월하여 후학들에게 변함없는 가르침을 전하는 법신(法身)의 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손연칠 작. <화엄 스님 상(부분도)> 1995년. 비단 바탕. 120x90cm. 개인 소장

 

<화엄스님 상>: 비단 위에 구현된 수행자의 숭고와 정면관의 미학

1995년에 제작된 화엄스님 상1990년대 중반 무석 손연칠 화백이 몰두했던 승려 진영(眞影) 제작의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종이가 아닌 전통적인 비단 바탕(絹本)을 사용하였으며, 대형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부분도 에서 확인되듯 인물의 안면에 가해 진 선염법은 지극히 치밀하다. 수염 한 올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정교하게 묘사된 필치는 작가의 숙련된 기량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시기의 작업은 작가가 스승 일랑 이종상의 권고로 불교미술의 현대적 변용에 매진하면서 전통 기법을 깊이 체득하였음을 보여준다. 수행자의 고결한 정신성과 종교적 숭고함이 전통적 조형 언어를 통해 어떻게 시각화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기할 점은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정면관(正面觀)의 구성이다. 정면관은 조선시대 초상화 전통에서 작가들이 비교적 까다롭게 여겨 신중히 다루던 구도였다. 측면관에 비해 이목구비의 대칭과 안면의 구조적 입체감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표현상의 난도가 높기 때문이다.

 

무석은 이러한 조형적 난점을 정면으로 돌파함으로써, 수행자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대면의 긴장감과 종교적 위엄을 동시에 화면 속에 구현하였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수행자의 내면적 품격과 정신성을 강렬하게 전달하는 정면 초상의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손연칠 작. <지허 스님 상> 2010년. 비단 바탕. 70x55cm. 금전산 금둔사 소장

 

<지허 스님 상>: 진실의 직시와 수행자의 기개

순천 선암사 주지와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선객(禪客)이자 차()의 대가인 지허 스님을 그린 이 초상은 스님과의 오랜인연에 의한사제지간의 깊은 신뢰가 투영된 수작이다. 무석은 스님의 신체적 특징(한쪽 눈의 실명)을 미화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가감 없이 드러냈다. 오히려 이러한 정직한 묘사는 세속적 아름다움을 넘어선 구도자의 준엄한 내면을 박진감 있게 전달하는 장치가 된다.

 

안면 묘사에서는 명확한 선묘를 기틀로 삼고 육리문법과 선염을 정교하게 중첩하여 안면의 구조적 입체감을 완벽히 구현했다. 특히 평상복 상의에 나타난 의습선(衣褶線)의 처리가 압권이다. 필선의 농담 변화와 예리한 각선의 교차, 그리고 직선의 절묘한 포치는 화면에 시각적 원근감과 리듬감을 부여하며, 손연칠 초상화가 지닌 탄탄한 구성력과 필력의 정수를 여실히 증명한다.

 

손연칠 작. <노인 상> 2008년. 비단 바탕. 65x43cm. 개인 소장    

 

<노인 상>: 연륜의 깊이가 묻어나는 노년의 초상

노인상은 허난설헌의 후손들을 수차례 만나면서 직계 후손을 그린 것이다. 초상의 얼굴에서 허난설헌 가문의 지적인 기품과 세월의 연륜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 무석은 전통 초상화의 정밀함을 바탕으로, 노년의 주름과 피부의 결, 검버섯 등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인물의 실존감을 극대화했다. 또한 얼굴의 근육 방향에 따라 미세한 선을 긋는 육리문 기법이 사용되어 노년기 피부의 질감이 살아있다. 특히 머리에 쓴 복건(幅巾)의 망사 재질을 겹쳐진 선들로 섬세하게 표현하여, 그 너머로 비치는 상투와 이마의 입체감을 살린 점이 돋보인다. 이는 고도의 집중력과 세필의 치밀한 필선을 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가는 허난설헌의 초상이 남아있지 않아 후손들을 통해 그 이미지를 유추하고자 하였으며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 직계 후손을 여러 차례 만나 관찰하고 그렸다는 점에서, 허난설헌 가문의 골격과 기질을 기록한 사료적 가치도 지닌다. 또한 화려한 배경을 배제하고 인물의 얼굴과 의복에만 집중하게 하는 정면 좌상 구도를 선택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대상과 마주 보고 대화하는 듯한 깊은 몰입감을 준다.

  

작가는 전통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은은한 채색법을 통해 안면 묘사에 집중하여 세련된 미감을 갖추고 있으며 이 초상화는 한 가문의 역사와 노년의 피부결을 매우 정직하게 담아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