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일랑 화업의 역사적 전신(傳神) 미학

천년의 걸물 2026. 4. 9. 14:50

인식 층위의 통합과 제도적 검증

운보 김기창과 월전 장우성이 각각 근현대 한국 초상화의 정신적 기초 확립과 조형적 외연 확장을 담당했다면, 일랑 이종상은 이 두 흐름을 국가 제도 안에서 작동 가능한 실천적 초상 체계로 구현한 작가다. 그는 특정 스승의 양식을 답습하거나 일정 방향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데 매몰되지 않고, 근현대 초상화가 축적해 온 전통적 인식과 기법을 제도적 요구에 맞게 종합하고 검증받은 독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랑의 초상화는 월전으로부터 계승된 정신 중심의 초상 인식, 즉 안면을 구성하는 필선과 반개법의 적극적인 활용과 육리문의 결 자체가 인물의 위상과 기운을 조직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파편화된 기법들의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학적 층위를 하나의 견고한 조형 체계로 통합하여 국가적 표상으로서의 완결성을 획득한 결과물이다.

 

선묘의 독립성과 역사적 전신

1) 생애와 화업의 형성

일랑(一浪) 이종상(李鐘祥, 1938~ )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61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1965년부터 3년 연속 특선을 기록하며 국전 최연소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는 초기부터 그의 천부적인 조형 감각과 미학적 안목이 화단의 공인을 받았음을 증명한다.

 

이종상은 1960년대부터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에 몰두하며 현장 조사를 통해 한국 회화의 원형적 미감을 탐구하였다. 이러한 학구적 토대 위에 고구려 고분벽화, 김대성과 석굴암 등 방대한 역사 기록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시각적 복원이자 사상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 후반에는 독도를 직접 답사하여 실경을 화폭에 담는 한편, '독도 문화 심기 운동'을 주도하며 예술을 통한 역사의식 확산에 앞장섰다. 또한 장지화, 동판화 및 대형 벽화 등, 재료와 형식을 넘나드는 실험을 지속하며 대법원과 분당역, 신리성지 등에 기념비적인 공공미술 작품을 남겼다. 이처럼 폭넓은 예술적 궤적은 그의 초상화가 단순한 외형 재현이 아닌, 역사·철학·사상의 총체적 인식 위에서 정립되었음을 뒷받침한다.

 

그는 대학 시절 은사였던 월전 장우성을 필두로, 이당 김은호와 운보 김기창에 이르는 근·현대 초상화의 핵심 계보를 모두 체득하였다. 이로써 그는 현대적 고등교육 체제 내에서 배출된 '1호 초상화 전문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승(師承) 관계는 그가 특정 양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의 조형 원리를 현대적으로 횡단하는 독보적인 초상 미학을 구축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2) 육리문법(肉理紋法)의 현대적 계승과 고증의 미학 

일랑의 초상화 안면부에는 얼굴의 근육 방향을 따라 미세한 선을 긋는 조선 후기 전통 기법인 육리문법이 정교하게 적용되었다. 이 미세한 필선 들이 중첩되며 형성하는 안면은 단순한 입체감을 넘어, 피부밑의 골격과 그 안에 갈무리된 기운()을 시각화한다. 이는 일랑이 월전으로부터 전수 받은 전통 기법을 본인만의 선묘 철학으로 다시 환원하여 발전시킨 주체적 계승의 결과이다.

 

3)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실현: 선묘의 독립성과 역사적 전신

형상을 통해 정신을 전한다는 전신사조의 원칙에 입각하여, 일랑은 인물의 눈빛 속에 관람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응시를 담아냈다. 이는 그가 동국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수득하며 다진 인문학적 통찰력이 초상화라는 매체를 통해 예술적으로 발현된 지점이다.

 

일랑 이종상 초상화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안면과 의습 전반에 걸쳐 선묘(線描) 자체가 지니는 독립성과 생명력을 자각하고 이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운보 김기창의 구성적·외형적 조형 원리와 월전 장우성의 운염 중심 안면 처리 방식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 일랑에게 선은 형상을 규정하는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인물의 역사적 생명력을 지탱하는 본질적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4) 선묘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적 재해석

일랑의 안면 표현은 강세황, 이명기, 이재관을 거쳐 월전으로 이어지는 운염 중심의 안면 인식 계보와 뚜렷한 변별점을 지닌다. 그는 윤두서, 변상벽, 진재해로 이어지는 선 중심 초상 전통에서 확인되는 윤곽선의 조직적 자율성과 필선의 구축적 기능을 포착하여 이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재구축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랑의 초상화는 전통의 단절된 마디를 찾아내어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맥동하게 만든 학구적 집념의 산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초상화에서 윤곽선은 단순히 형태를 둘러싸는 외곽선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조형 요소로서 안면의 구조와 긴장을 주도한다. 선은 운염에 의해 해체되거나 은폐되지 않고, 오히려 선 자체가 형상을 이끌며 인물의 존재감을 조직한다. 이 과정에서 필선은 형태 묘사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인물의 기운과 위상, 정신적 긴장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이러한 선 중심의 안면 인식은 초상을 닮음의 재현이 아니라, 필선을 통해 인물의 본질을 구축하는 조형 행위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정부표준영정. 1979년. 비단 바탕. 180x115cm. 파주 웅도 영당 소장.

 

 

<윤관장군 상>: 고려 무관 특유의 장중함

이 그림을 처음 대하게 되면 맨 먼저 느끼는 구도의 안정감에서 오는 균형미의 압도적인 긴장감이다. 이는 곧 좌우로 정확하게 대칭된 파격적인 구도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면상의 좌우 대칭 구도는 신성함과 권위를 형성하며 철혈 장군의 단호한 의지를 시각화 하고 있다. 한편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대칭 구도 안에서, 세밀한 비단 결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절제된 힘'이 느껴지는 선묘(線描)로 필선의 굵기를 조절하며 리듬감을 주었고 관복의 주름을 조절함으로써 고려 무관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기품을 완성했다.

 

윤관 장군은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은 북방 개척의 주역이지만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문관 출신의 장수였다. 이 화백은 이 점에 착안하여, 눈빛에 살기(殺氣)보다는 문()과 무()의 조화로운 눈빛으로 치밀한 전략가로서의 지혜와 차분함을 담아냈으며 이는 광개토대왕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율곡 이이의 온화한 선비 정신 사이의 절묘한 균형점에 위치한다.

 

안면의 콧날과 눈매에는 장보고 영정에서 보았던 '독립적이고 강인한 선'이 사용되어 북방의 추위를 뚫고 승전보를 울린 장군의 결연함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 화백의 전매특허인 '철저한 고증'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피부색이 인위적이지 않고 은은하게 깊은 맛을 내도록 했으며 단색으로 표현된 의복은 고려 시대 관복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선을 두텁게 쓰면서도 끝부분은 예리하게 마무리하여, 중량감 있는 관복 아래 숨겨진 무인의 민첩함을 시각화 하고 있다.

 

기법의 복합적 계승과 국가 표상의 확립

1) 반개법과 육리문법의 복합 계승 구조

일랑 이종상은 반개법(半開法)과 육리문법(肉理紋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서 동시에 구현해 낸 현대 한국 화단의 독보적인 작가다. 그의 초상화에서는 눈동자의 반개 처리를 통해 형성되는 내적 긴장감과, 안면 전반에 정교하게 적용된 육리문의 미세한 결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인물의 생동감을 완성한다.

 

특히 오만원권의 원본인 <신사임당 영정>과 최근작인 <이어령 초상>에서는 육리문법이 안면 전체에 적극적으로 운용되어, 대상 인물의 생리적 사실성과 정신적 품격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신사임당 영정>은 실존 자료가 부족한 추사(追寫)’라는 제약 속에서도, 육리문을 통한 회화적 해석을 가미함으로써 인물의 실재성과 역사적 권위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낸 사례다.

 

이는 윤두서, 변상벽의 선묘 전통과 강세황, 이명기, 진재해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 시대 초상화의 핵심 기법이 근, 현대의 단절을 딛고 일랑의 작업에서 복합적 재구성의 형태로 생명력을 얻었음을 시사한다. , 일랑의 초상화는 전통의 마디를 잇는 단순한 계승을 넘어, 흩어져 있던 고전적 기법들을 하나의 화면에 통합시킨 현대적 전신(傳神)의 정점이라 평가할 수 있다.

 

 

2) 정부표준영정과 화폐 초상의 독보적 위상

일랑 이종상은 정부표준영정으로서 <광개토대왕>, <단원 김홍도>, <장보고>, <원효대사>, <우륵 상>, <윤관장군> 등 다수의 역사 인물 영정을 제작하며 국가적 시각 표상을 정립해 왔다.

 

이종상 작. <고산 윤선도 상> 2022년. 비단 바탕. 190x116cm. 녹우당 소장

                                        

3)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실현

이종상 화백은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영정을 통해 동양화의 핵심 사상인 전신사조즉 외형뿐 아니라 인물의 정신과 인격까지 담아내는 화법를 완벽히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율곡의 얼굴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 성리학의 태두가 지녔던 인품과 학문적 위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동일 작가가 화폐 초상을 전담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30년이라는 시차 속에서 서로 다른 시대적 요구와 시각 문화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그의 초상이 다시금 국가 화폐라는 국가 이미지의 심장부에 채택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그의 초상 미학이 일회적 성과를 넘어 한국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지탱하는 지속 가능한 표상 체계로 확고히 기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사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화폐 초상화는 단순한 인물 재현을 넘어 국가적 정체성과 권위를 담아내야 하는 까닭에, 이를 맡을 수 있는 전문 초상화가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종상의 초상화는 단순한 재현 기교를 넘어 역사를 통찰하는 깊이와 조형적 신`1 뢰도를 동시에 충족시켰으며, 이는 국가 제도가 공식적으로 보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의 독보적 성취는 국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화폐 초상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전문 초상화가가 한국 화단 내에서도 극히  드물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4) 일랑 초상화가 국가 표상 체계에서 차지하는 위상

정부표준영정과 화폐 초상은 개인 작가의 미학적 성취를 상찬하기 위한 장르가 아니다. 이는 국가가 특정 역사 인물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표상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합의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 체계에서 요구되는 덕목은 화가의 개성적 필치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 조형적 안정성, 시대를 초월하는 상징성, 그리고 대중적 인식에 대한 강력한 설득력이다. 이러한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는 작가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일랑 이종상의 초상화가 국가에 의해 반복적으로 선택된 배경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종상은 그동안 <광개토대왕 상>부터 <윤관장군 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계층, 성격이 판이한 인물들을 영정으로 형상화해 왔다. 이는 그가 특정 유형의 인물상에 매몰된 작가가 아니라, 각 인물이 지닌 역사적 층위와 정신적 전형성을 국가적 표상으로 조직해 낼 수 있는 조형적 판단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5) 노년의 지혜를 담은 섬세한 필선

장보고와 윤관 장군 영정이 '굵고 명확한 선'으로 영웅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윤선도 상은 노년의 깊이와 문학적 감성이 묻어나는 섬세한 선이 특징이다. 안면은 80세 노경의 윤선도를 묘사하며, 그의 시선은 허공을 응시하는 듯하면서도 날카롭게 깨어 있습니다. 이는 현실 정치에서의 강직한 비판 정신과 자연 속에서의 예술적 몰입이 공존하는 윤선도만의 복합적인 내면을 드러냅니다. 눈가와 이마의 주름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렸다. 이는 단순한 노화의 표현이 아니라,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겪고 자연으로 돌아온 대문호의 연륜과 지혜를 시각화한 것이다. 은백색의 수염 한 올 한 올을 정성 들여 그린 세필 기법은 인물의 고결한 인품을 상징한다.

 

해남 윤씨 종가인 녹우당(綠雨堂)'에 봉안된 이 영정은 녹우당'의 정신을 담은 색채를 통해 가문 내 증언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복식은 윤선도가 즐겨 입었을 법한 담백하고 정갈한 관복의 색조는 화려함을 멀리하고 자연과 벗 삼았던 그의 '어부사시사'적 삶을 투영하고 있다.

 

화면은 190x116cm라는 압도적인 크기의 비단 바탕 위에 스며든 은은한 색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조선 사대부의 격조 높은 실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윤관 장군상이 '정면 대칭'을 통해 장중함을 주었다면, 윤선도 상은 약간의 측면(팔분면)을 취함으로써 시인 특유의 정적(靜寂) 속의 역동성으로 사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종상 작. <김홍도 상>(표준영정) 1981. 비단 바탕. 110.2x85.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단원 김홍도 전신상>: 철저한 고증과 '육리문법'의 정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의 실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종상 화백은 철저한 고증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우리 민족이 기억하는 단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종상 화백은 김홍도의 자화상 격인 <단원도>와 당시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용모를 설정했다. 특히 얼굴 묘사에서 육리문법(肉理紋法)을 극대화했는데, 이는 피부의 결을 따라 미세한 붓질을 수십번 반복하여 안면의 입체감과 생동감을 살리는 전통 기법이다. 덕분에 평면적인 동양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의 골격과 피부 질감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작품 속 김홍도는 선비 화가로서의 풍모를 화려한 관복이 아닌 단정한 야복(野服) 차림을 하고 있다. 이는 권위적인 관리의 모습보다는 자유로운 예술가이자 풍류를 즐기던 선비로서의 면모를 강조한 것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듯하면서도 깊은 사색에 잠긴 눈빛은 조선의 산천과 서민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천재 화가의 내면을 상징하며 옷 주름을 나타내는 선들은 힘 있고 절제되어 있어 단원의 강직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령 상>이 현대 지식인의 열정적인 순간을 포착했다면, <김홍도 상>은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의 영혼을 박제한 듯한 엄숙함이 느껴진다.

 

 

이종상 작. <둔촌 이집 상>(부분도) 2017년. 비단 바탕. 187x112cm. 기흥 추원당 소장    

                                      

<둔촌 이집 상>; 전통 전신사조의 극치  <둔촌 이집(遁村 李集)>은 고려 말의 대 유학자이자 광주 이씨의 중시조인 둔촌 선생의 높은 기개와 학문적 품격을 현대적 예술혼으로 부활시킨 역작으로 700여 년 전 인물의 기개와 고결한 선비 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생생하게 구현했다.

 

특히 안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육리문법(肉理紋法)의 정교함과 짙은 갈색 윤곽선의 명확한 필선은 전통 안면 묘사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피부의 미세한 결부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검버섯,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수염의 묘사는 인물의 외양을 넘어 그가 평생 지켜온 강직한 성품과 연륜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듯 하다. 전체적인 의습에서 비단 바탕에 스며든 은은하고 깊이 있는 색채는 대상의 내면을 비추는 전신사조의 정수를 보여주며, 관복을 입고 정좌한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의 형식을 갖추어 가문의 시조로서 갖는 위엄과 상징성을 극대화했다그리고 종이가 아닌 비단(絹本)을 사용하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깊이 있는 색감과 우아한 광택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처럼 정좌한 자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은 시대를 초월한 선비 정신의 정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는 한국 표준영정의 대가인 일랑 화백이 평생에 걸쳐 천착해 온 전통 초상화 기법이 노년의 완숙미와 만나 이뤄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6) 스승 월전의 '문기(文氣)'와 일랑의 '사실성'의 조화

이 작품은 스승 장우성 화백이 강조했던 문인화적 기운(文氣)과 이종상 화백 특유의 치밀한 사실적 묘사가 완벽하게 결합된 사례로 평가 받는다. 부드러운 선의 흐름 속에 숨겨진 꼿꼿한 선들은, 고산이 평생 견지했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선비 정신'을 웅변한다. 요약하자면 <고산 윤선도 상>'()와 서(), ()가 일치된 인물'로서의 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부활시킨 걸작이다. 장보고가 '바다의 힘', 윤관이 '대륙의 위엄'을 상징한다면, 윤선도 상은 '조선 선비 정신의 정수와 예술적 향기'를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7) 기억의 지속성과 제도적 종합

정부표준영정과 화폐 초상이라는 특수 장르에서 일랑의 초상화는 과도한 사실주의에 함몰되지도, 작가 개인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반개법과 육리문법, 그리고 선() 중심의 안면 조직을 통해 인물의 정신성과 조형적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이는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특정 시대의 일시적인 시각 감각에 종속시키지 않고, 장기적인 국가 기억 속에 정착시키기 위한 고도의 조형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랑의 초상화는 단순히 시각적 닮음을 설득하기보다, ‘기억의 지속성을 우선시하는 국가 표상 체계의 요구에 가장 충실히 부합하는 형식을 제시한다.

 

이종상 작. <이어령 상> 1987년.비단 바탕. 66.5x63.5cm. 이어령 문학관 소장 

 

<이어령 상> 강렬한 필선의 전시사조

일랑 화백이 평소 가깝게 지내며 존경해 온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화폭에 오롯이 담아낸 희귀한 걸작이다. 약간 측면을 향한 얼굴에서는 섬세한 육리문법이 돋보이며, 짧게 자른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무엇보다 평생을 지적 탐구와 열정적인 강연으로 일관했던 선생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압도적이다.

 

무언가를 설득하려는 듯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손의 구체적인 표현은 매사에 적극적이며 해박했던 선생의 품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손을 그린 뚜렷한 윤곽 필선과 짙은 곤색 양복 위로 강렬하고 분명하게 뻗은 의습선은 단순한 외양 묘사를 넘어, 선생의 깊고 심오한 내면세계까지 생생하게 표출해 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일랑 화백만의 독자성이 잘 드러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종합과 완결

제도적 검증을 통한 미학적 안착

중요한 점은 이러한 미학적 종합이 작가 개인의 실험적 시도에 머물지 않고, 정부표준영정과 화폐 초상이라는 가장 엄격한 제도적 검증대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일랑의 초상화가 반복적으로 국가 이미지의 중심부에 채택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의 초상 인식이 특정한 시대의 일시적 미감이나 화가의 주관적 개성에 경도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장기적인 국가 기억을 보존하고 공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견고한 조형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일랑 이종상은 전통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화가에 머물거나, 국가의 요구를 기계적으로 수행한 기능공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전통의 미학적 정수와 국가 제도의 상징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초상화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안정화하고 완성한 미학적 종합자였다.

 

한편 그의 제자 무석에 따르면, 일랑은 제자들을 지도할 때 독특한 교육 방법을 활용한다고 전한다. 그는 제자들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고사(古事)를 찾아 예를 들어가며 알아 들을 때 까지 설득하면서 오직 언어를 통해 가르친다. 다시 말해 제자의 밑그림이나 화판에 절대 손을 대지 않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숙제를 제시할 때는 문제를 던지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정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유태인 교육 방식을 철저히 따른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역할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