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복원과 제도 속의 전신
1) 생애와 화풍의 형성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1912–2005)은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1930년(18세)에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낙천헌(樂天軒)’에 입문하며 본격적인 화업(畫業)을 시작하였다. 그는 운보 김기창보다 한 살 위였으나, 입문 시기는 운보보다 약 4년 후가 된다. 장우성은 실기 교육과 병행하여 ‘한어 학원’에서 한문을 익히고, 서예가 김돈희(金敦熙)에게 서예를 사사하며 시·서·화(詩·書·畵)를 두루 갖춘 문인화의 기초를 체계적으로 습득하였다. 이러한 이력은 그의 회화가 단순한 기술적 숙련을 넘어, 전통 회화의 이론적·정신적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음을 보여준다.
입문 2년 만인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입선을 통해 화단에 등장한 그는 1944년까지 연속적으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36년에는 김기창, 백윤문, 조중현, 이유태 등과 함께 이당 문하생들의 결사체인 후소회(後素會)를 창립하였으며, 1944년에는 선전 추천작가로 선정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서세옥, 이종상 등 현대 한국화를 대표하는 거목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문인화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수묵의 사의성(寫意性)을 강조한 세련된 근대적 화풍을 확립하여 ‘마지막 문인화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장우성은 산수, 화조, 성화 및 불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였으나, 특히 역사 인물 초상화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이는 단순히 과거 양식의 답습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해체된 전통 초상화의 조형 문법을 복원하고 재조직하려는 의식적 노력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전통 초상화 계보의 재접속
월전의 초상화는 조선 초기의 정교한 선묘법(線描法)과 조선 후기에 완성된 운염(暈染) 중심의 안면 표현법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양상을 보인다. 조선 초기 초상화에서 '선(線)'은 단순히 외형을 규정하는 도구를 넘어, 눈매와 입술의 미묘한 변화 속에 인물의 성정과 기운을 담아내는 핵심 요소였다. 조선 후기에는 선염법(渲染法)이 도입되면서 안면 표현의 입체성이 점진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서 근대에 이르러 서양식 명암법과 사진술의 영향으로 선묘의 역할이 급격히 약화 되었고, 전통 초상화 미학은 근대적 시각 앞에서 긴 해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월전은 이러한 역사적 단절 속에서, 이명기의 <서직수 초상>에서 확인되는 안면 묘사 방식을 적극적으로 복원, 계승하게 된다. 즉, 안면에서 윤곽선을 설정하고 그 선을 따라 담색(淡色)의 선염을 반복하여 얼굴의 요철을 형성한 뒤, 은은한 운염을 덧입혀 자연스러운 입체감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강세황, 이명기, 이재관, 이한철로 이어지는 도화서 화원들의 정통 화법을 근대적으로 복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서양식 명암 대비와는 궤를 달리하는 전통 초상화 내부의 입체성 표현법을, 월전은 근대적 창작 조건 속에서 의식적으로 재활성화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상>: 장군으로서의 위엄과 불굴의 의지
장우성이 제작한 <이순신 장군상>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나라를 지킨 명장 이순신의 충의와 결연한 기개를 관복을 입혀 상징적으로 구현한 표준영정이다. 화면은 전신에 가까운 장대한 규모로 구성되어 있으며, 곧게 선 자세와 엄정한 시선은 장군으로서의 위엄과 불굴의 의지를 강조한다. 갑옷과 복식의 세밀한 묘사는 장식성과 사실성을 조화롭게 결합하고 있으며, 강한 필선과 절제된 색채는 인물의 긴장감과 전장의 기세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얼굴 표현에서는 단호하면서도 침착한 내면을 드러내어, 영웅적 인물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전통 초상화의 전신사조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장우성의 <이순신 장군상> 제작 과정에서 그려진 하도는 완성작에 이르기 전 구도와 인물 비례, 세부 요소를 검토하기 위한 밑그림이다. 간결한 필선과 생략된 묘사 속에서도 인물의 기본적인 자세와 화면 구성의 긴장감이 이미 확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도는 완성작에 비해 세부 장식과 채색이 배제되어 있으나, 오히려 작가의 조형 의도와 필선의 생동감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장우성이 전통 초상화의 형식적 규범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화면 구성과 인물 표현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3) 스승을 넘어선 청어람(靑於藍)
주목할 점은 운보와 월전이 동시에 구현한 전통 기법들이 정작 스승인 김은호의 초상화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시 김은호의 작업은 사진술과 서양식 명암법에 경도되어 사실적 재현에만 함몰되어 있었으며, 반개법이나 육리문법 같은 전통 안면 묘사 기법은 사실상 방기(放棄)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두 제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 초상화의 이론과 실례를 탐구해 이를 화면에 복원해 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러한 성취는 운보와 월전을 단순한 수호자를 넘어, 단절된 전통을 독자적으로 재발견하고 재구성한 주체로 격상시킨다. 이는 제자가 스승을 넘어선 ‘청어람(靑於藍)’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요컨대 이들의 작업은 사실성과 사진적 재현으로 치우쳤던 근대 초상화의 흐름을 전통의 본령으로 되돌려놓은 중대한 전환점이다. 특히 월전이 복원한 반개법은 과거 기법의 우연한 잔존이 아니다. 이는 전통의 정신성을 회복하기 위한 의식적 탐구와 주체적 선택이 낳은 필연적 산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4) 반개법(半開法)의 독자적 복원
월전 초상화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눈의 표현, 즉 반개법(半開法)의 일관된 운용에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반개법은 윗눈꺼풀이 홍채의 약 3분의 1을 덮어 눈동자가 반원형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이는 외형적 사실성보다는 인물의 내적 정신성과 응축된 기운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고개지(顧愷之)가 인물화에서 ‘눈’을 가장 중시했던 것처럼, 안면 묘사에서 눈동자는 인품과 감정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반개법의 기원은 깊다. 석굴암 본존상의 눈동자에서 그 전형이 확인되며, 간다라 불상이나 일본의 고대 불상, 그리고 고려 불화에서도 풍부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면 불상과 불화에서조차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본래 반개법은 육리문법, 배채법과 함께 사승(師承) 관계를 통해 전승되던 비법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기능 중심의 계승이 이루어지며 그 이론적 맥락이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적 관점에서 반개는 단순한 형상을 넘어선다.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지허(指墟) 스님에 의하면 불교에서의 반개는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근원적 형상으로 내적 정신의 직관(直觀)을 통하여 천지 만유를 보는 것이요. 유한한 세계와 무한한 세계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체 되는 동시성의 초연(超然)함이며 영겁(永劫)을 넘어 삼라만상(森羅萬象)을 꿰뚫어 내외 명찰(冥刹)함이다“ 라고 해석하였다.
이를 초상화에 적용할 때, 반개법은 인물의 내적 세계와 초월적 기운을 화면 안에 응축하는 강력한 장치로 기능한다.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에서 반개법이 지니는 미학적 의미는 바로 이 지점, 즉 외형의 재현을 넘어선 정신의 직관과 초월성에 맞닿아 있다.
이처럼 고도의 정신성을 담보한 기법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초상화에서 반개법은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윤두서의 <심득경 초상>(1710년)이나 이한철의 <정몽주 초상>(1880) 등에서 부분적인 유사성이 관찰되나, 이는 반개에 대한 이론적 자각이라기보다 사실적 묘사 과정에서 도출된 우연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명기, 윤두서의 작품이나 김은호의 초상화 역시 사진 적 사실성에 경도되어 반개에 대한 의식적 인지는 결여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월전의 <이순신 영정>, <정기룡 장군상>, <조식 초상> 등에서는 반개법이 명확하고 의도적으로 적용된다. 이는 월전이 반개법을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인물의 담력과 정기를 표출하는 핵심 조형 장치로 확고히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월전은 평론가 박용숙과의 대담에서 “옛 화가들이 왜 눈의 정기를 중시했는지 깨달았다”. 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자각이야말로 단절되었던 전통의 ‘전신(傳神)’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주체적으로 복원해 낸 성과라 할 수 있다.
5) 월전의 ‘전통 복원’과 그 의의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는 단순한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 한국 근현대 회화사에서 ‘전통 복원’의 결정적 사례로 재정의 되어야 한다. 그는 조선 초상화가 견지했던 전신(傳神)의 개념과 안면 조형의 내적 논리를 스스로 탐구하고 재조직함으로써, 단절된 핵심 원리가 근대적 토양 위에서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였다.
특히 반개법의 의식적 복원은 기법의 단순한 복각이 아니라, 인물의 정신성과 기운을 응축하는 전통 초상화의 본질을 현대적 조건 속에서 다시 활성화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월전은 이재관, 이한철 이후 사실상 소멸했던 조선 초상화의 핵심 가치인 전신, 정기(精氣), 내면의 응축을 다시 화두로 삼았으며,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반개법과 운염법이라는 고전적 어휘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였다.

<조식 상>: 단정한 형식의 정신적 긴장
장우성이 제작한 <조식 상>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인 조식의 강직한 학자적 기개를 형상화한 정부표준영정이다. 화면은 단정한 좌상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약간의 측면상과 안정된 구도를 통해 인물의 도덕적 권위와 정신적 긴장을 강조한다. 간결한 배경과 절제된 색채는 인물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얼굴 표현에서는 과도한 생리적 사실성보다 내면의 기품과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단정한 의관과 엄정한 자세는 유학자로서의 절의와 자기 수양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추사 초상의 성격을 바탕으로, 외형적 재현을 넘어 인물의 정신성과 학문적 위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전통 초상화의 전신사조를 계승하면서도, 국가 표준영정으로서 요구되는 규범성과 이상성을 반영한 유학자 초상이 지닌 도덕적 상징성과 형식적 전통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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